현실에서 줄 수 없는 것을 상상으로 주기

때때로 아이들은 부모님들이 주기 불가능한 것들을 원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왜 가질 수 없는지 설명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성적인 접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게 당신에게 어떻게 작용되었습니까? 잘 안되었습니까?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논리를 따라가지 않습니까? 당신이 설명을 하자마자 아이가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까?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서적 고통에 빠진 아이는 합리적인 이유로 쉽게 달래지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훌륭한 방법은 아이에게 상상으로 현실에서 줄 수 없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마켓에서 사지 못했던 사탕을 떠올리며 차에서 계속 울고 있을 때, 충치에 대해서 아이에게 연설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인정하십시오. 솔직히 캔디는 맛있습니다. 하루 종일 사탕을 먹고 치아에 아무런 일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식사를 막대사탕으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점심식사로? 아이들이 이 이야기에 맞장구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세 아들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탕들로 만들어진 길 위를 달콤한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자동차로 달리는 행복한 상상을 했던걸 기억합니다. 잠깐 내려서 범퍼를 먹고, 길거리에 있는 과자를 줒어 먹는 것입니다. 

 

 

 

 

 

괴로워하는 아이에게 질문참기

당신은 우리가 아이에게 질문으로써 아이의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 것을 알아챘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슬프니? 이것이 너를 화나게 했니? 왜 우니? 심지어 자상한 질문들도 아이가 화가 나있을때는 짜증나게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조차도 왜 화가났는지 이유를 모를 수 있고, 말로써 명확하게 표현 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종종 이러한 질문들은 어른들도 화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정당화 시키는 느낌을 받고 그 설명이 질문자의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질문 대신 말을 함으로써, 우리는 어떠한 것도 정당화 시키지 않고 감정들을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공감하기 위해서 그 감정들의 원인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간단히 '슬프구나, 뭔가가 너를 화나게 했구나, 무슨일이 있구나' 라는 말로 아이의 마음이 내키면 말을하고, 말하기 싫으면 위로를 해줄 수 있습니다.당신은 우리가 아이에게 질문으로써 아이의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 것을 알아챘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면, 슬프니? 이것이 너를 화나게했니? 왜우니? 심지어 자상한 질문들도 아이가 화가나있을때는 짜증나게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조차도 왜 화가났는지 이유를 모를 수 있고, 말로써 명확하게 표현 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종종 이러한 질문들은 어른들도 화나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정당화 시키는 느낌을 받고 그 설명이 질문자의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질문 대신 말을 함으로써, 우리는 어떠한 것도 정당화 시키지 않고 감정들을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공감하기 위해서 그 감정들의 원인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간단히 '슬프구나, 뭔가가 너를 화나게 했구나, 무슨일이 있구나' 라는 말로 아이와 물꼬를 틀 수 있습니다. 만약 아이가 이야기 하고 싶어하지 않으면 그냥 위로를 해줄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저는 질문하는 대신 잭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문장으로 만들어 이야기합니다. "잭, 화가나 보이기도 하고 슬퍼 보이는 것 같구나." 이 말로 잭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잭은 저에게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바보, 멍청이' 같은 나쁜 단어들도 있었습니다. 잭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제 얼굴 올 보더니 활짝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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